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우리는 다음 세계를 예감하고, 방금 읽은 문장을 마음속에 눌러 담는다. 제8회 전주독서대전은 그 ‘넘기는 순간’을 주제로 9월 5일부터 7일까지 전주한벽문화관 일원에서 열렸다. 책장을 ‘넘기며’ 느낀 다양한 순간을 나누고, 변화하는 시대를 책과 함께 어떻게 잘 ‘넘겨볼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올해 독서대전은 총 93개의 프로그램으로 채워졌다. 작가 초청 강연은 여전히 인기였다. 소설가이자 배우인 차인표, 법의학자 이호, 소설가 최은영 등 서로 다른 장르의 11명이 무대에 올라 책이 지닌 다층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안도현·유희경·유강희 시인이 함께한 강연 시리즈 ‘시와 만나는 순간’, 전주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강경수·김근혜·김소영·이희영 작가의 강연도 이어졌다.
축제의 중심인 북마켓에는 29개의 출판사와 서점이 참여했으며,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운영하는 ‘평산책방’도 합류해 많은 인파를 불러 모았다. 전반적으로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과 체험이 돋보였다. 비슷한 도서전인 전주책쾌, 군산북페어의 경우 '힙'하다는 평은 받았으나, 최근 독서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2030세대에 맞춰져 있어 어린이들이 즐기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반대로 독서대전 현장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가족 단위의 참여가 축제의 활기를 더했다.

다만 폭염 속 야외 부스에서 열린 북마켓은 관람객이 천천히 책을 고르기보다는 그늘을 찾게 만들었다. 무더위 쉼터와 정수기가 마련되었지만 더위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폭우까지 쏟아지며 북마켓은 조기 철수해야 했다. 10월 중순에 열리던 독서대전은 올해 일정을 앞당겨 여름인 9월에 열렸다. 점점 더워지는 기후 속에서 시기를 9월로 조정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실제 방문객 후기에서도 ‘너무 더웠다’는 반응이 많았다.
독서대전은 본격적인 축제 시작 전부터 '전주 올해의 책' 선정과 더불어 다양한 시민 공모전과 필사릴레이’ 같은 프로그램을 이어오며 일상 속에서 시민 독서 문화를 꾸준히 이끌어왔다. 지역 독서동아리, 지역 대학의 문헌정보학과 학생들, 문화기획자 등 다양한 계층이 함께 기획했다는 것 또한 특징이다.
하지만 지역 독립서점이나 출판사들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전주는 어느 도시보다 ‘책’을 매개로 한 문화가 활발하다. 그 중심에는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독립서점들이 있다. 책방지기들은 기획단과 강연 진행 등 여러 방식으로 참여했지만, 이들의 고유한 문화적 역량이 이번 행사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못했다.

또한 가족 방문객 중심으로 구성된 탓에 성인 독자들이 즐길 거리가 부족했다. 청년 세대를 겨냥한 ‘청년, 책으로 만나다’ 토론회, ‘Chat GPT 시대의 독서와 독서모임’은 책과 기술, 시대의 화두가 교차하는 지점을 흥미롭게 보여주었지만 대부분 예약 프로그램이어서 현장 참여가 어려웠다. 중년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더욱 미비했다. 사전예약 프로그램 외에 성인들이 현장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더 필요하다.
전주독서대전은 지난해 전주종합경기장으로 옮겨 ‘전주페스타’의 일부로 열리며 시민들과 만났다. 그러나 여러 축제가 통합된 구조 속에서 독서대전만의 정체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는 한옥마을로 돌아오며 독서대전만의 색을 되찾으려 했다. 그 시도는 분명 의미 있었지만, 여전히 독서대전만의 정체성은 의문이다.
전주에는 이미 특성화도서관, 독립서점, 다양한 북토크와 체험 프로그램이 풍부하다. 전주책쾌, 전주그림책도서전 같은 도서전도 활발하다. 여러 도서전 중 마지막을 장식하는 독서대전은 시작 당시와는 다른 환경에 놓여 있다. 축제가 시작한 지 8년이 지난 지금, 독자들은 단순히 현장에서 책과 작가를 만나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금은 ‘텍스트힙’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둘러싼 문화가 사회적 열풍이 되었다. 이 흐름을 잇기 위해서는 보다 탄탄한 기획을 갖추고, 방문객의 편의까지 고려한 축제로 자리 잡아야 한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