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사람들  2025.10월호

유물의 시간을 붙잡는 보존과학의 세계

보존과학 학예연구사 박승원




인간이 나이가 들고 노화를 맞듯, 유물도 노화를 겪는다. 우리보다도 더 긴 시대를 살며 깨지고 깎이고 변화하는 유물들은 어떻게 100년, 200년이 넘도록 살아남고 있는 걸까. 역사 속 유물들의 시간은 보존과학을 통해 지켜지고 있다. 보존과학이란 박물관의 환경 관리부터 과학적인 보존처리를 통해 후대에도 문화유산이 전해질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을 말한다. 소중한 유물이 박물관에 전시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과정이 바로 보존과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잘 관리된 전시품만을 만나는 우리는 그 과정을 잘 알지 못한다. 국립전주박물관의 보존과학 담당 박승원 학예연구사를 통해 유물의 시간을 붙잡는 보존과학의 세계를 전한다.  


유물을 치료하는 의사의 마음으로

보존과학은 크게 유기물과 무기물로 구분해 관리한다. 금속, 토기, 석조, 목재, 지류, 직물 등 재질에 따라 그에 맞는 처리 과정을 거친다. 규모가 큰 중앙박물관을 제외하고는 재질마다 세부적인 담당자를 두기 어렵기 때문에 전체 유물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복합재질을 다루어야하기에 보존과학자는 어떤 재질이든 그 특성을 파악하고 있어야한다. 부족한 부분은 해당 재질에 대해 더 높은 전문성을 갖춘 이들의 자문을 받아 진행한다. 보존과학 영역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협력이 필수적이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은 기본 전수조사를 통해 A부터 D등급으로 분류된다. 이를 바탕으로 바로 처리가 필요한 응급 상황의 유물부터 언제든 전시될 수 있는 안정화된 유물을 분류해 관리하게 된다. 마치 보존과학자는 의사, 유물은 환자와 같은 역할인 셈이다. 


“과거에는 보존처리라는 용어를 주로 썼거든요. 기술적으로 깨진 걸 다시 붙이고, 손상된 걸 복구하는 것까지만 하면 이후는 연구자들의 몫이었는데 지금은 보존과학 분야에서 해낼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아졌어요. 저희는 의사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니지만, 문화유산을 위해 양쪽에 걸친 역할을 수행하고 있죠.” 


박물관 너머 지역 문화유산까지 

박승원 학예연구사는 보존과학이 아닌 복식을 전공했다. 복식사를 공부하며 박물관에 들어간 그는 여러 유물을 접하기 시작하며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존과학에 뛰어들며 국립대구박물관을 비롯해 최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긴 시간 일했다.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역사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만질 수 있다는 것. 남들은 볼 수 없는 유물의 깊숙한 면면을 보는 일은 그가 꼽는 보존과학의 가장 큰 매력이다.







작년 4월, 국립전주박물관에 온 이후 1년을 보낸 그는 지역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서 보존과학의 역할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전북에서 가장 큰 박물관으로, 지역 유관기관의 요청도 그만큼 많은 편이다. 이에 중요도가 높은 유물이나 특정 기술이 필요한 작업 등 요청에 따라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 안에서의 연계는 전주박물관이 향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전북에는 중요 사찰들이 많아요. 사찰마다 귀중한 유물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들을 다 자체적으로 관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죠. 실제로 전북의 사찰 문화유산을 천천히 정리해나가면서 금산사 성보박물관에서는 유물에 대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듣게 됐고, 가능한 영역 안에서 도움을 드렸어요. 거기서 끝이 아니라 금산사를 주제로 한 기획 전시를 열어서 가치 있는 유물을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했죠. 이렇게 지역 안에서의 문제를 같이 해결해나가는 게 저희 전주박물관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요.”


보존과학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는 일 

시대에 따라 보존과학 분야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초기의 보존과학은 손상된 부분을 메꿔서라도 원형의 모습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했지만, 지금은 발굴 당시 유물의 현 상태를 그대로 지켜내는데 더욱 집중하는 편이다. 


“이제는 무리한 보존 처리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예를 들어 금은 반짝반짝할수록 좋다는 생각으로 더 반짝거리게 만들었는데, 그러다 보면 유물이 가지고 있는 고색의 미는 사라지거든요. ‘그게 정말 유물이 맞아? 새로 만든 것 아니야?’ 이런 질문이 생기기 때문에 지금의 방향으로 흘러오게 된 거죠.”


그는 보존과학에 대한 좋은 선행 자료가 남을 수 있도록 기록화하는 작업을 꿈꾸고 있다. 선배들로부터 끊임없는 고민과 시행착오를 통해 찾아낸 안정화된 방법과 새로운 기술, 연구 과정들을 정리해 표준이 되는 매뉴얼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더 많은 유물이 시대를 뛰어넘어 공유되길 바란다.


고다인 기자